친환경농산물 유통업자 간담회
조회669Ⅰ. 친환경농업을 위한 전제 조건
지난 40여년 간 우리나라는 농약과 비료의 과다투입으로 인한 증산 위주의 농업 정책을 펼쳐 왔다. 그러나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30%를 밑돌고 있다. 더구나 엄청난 석유 자원의 투입은 생산비를 증가시키고, 생태계를 교란하고, 물과 흙을 죽이는 꼴이 되었다.
친환경농업이 우리나라 농업의 대안이 되고자 한다면 전제 조건이 있다. 그 전제 조건은 우리나라의 농업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민을 빼앗아 먹는 대상이 아니라 농민을 적극적으로 키워내는, 도와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쿠바 농업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일을 농업 농민 중심이 되도록 시스템을 짠다면 분명히 희망의 빛이 보일 것이다.
결국 친환경농업이 제대로 되려면 정부 정책과 생산, 인증, 유통 시스템이 서로 협력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국내 친환경농업은 민간과 정부 간에, 민간과 민간 간에, 정책과 기술 간에 일치된 의견이 없이 진행되어 왔다. 각자 입장에 따라 차이를 인정하면서 진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친환경농업 정책 수립 초기부터 국내 농업이 안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까지 친환경농업 정책 추진에 꿰맞추려는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친환경농업과 유기농업에 대한 방향과 목표가 서로 일치하지 않아, 정부 연구기관의 친환경농업 연구와 농자재에 대한 연구는 물론 법적 뒷받침도 미미한 수준으로 정부와 업자와 농민이 따로 노는 상황이다.
민간단체 또한 의욕은 앞서나 재정 자립도가 낮아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재정 자립을 위한 대책으로 친환경 농자재나 친환경 농산물 유통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 민간단체 또한 친환경 농산물이나 농자재 유통이 과연 농민 중심인지, 단체 중심인지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이렇듯 친환경농업에 대한 목표와 방향의 왜곡과 연구와 생산기술, 농자재의 낙후성으로 인하여 수입 농자재와 이름만 친환경인 농자재가 판을 치고 있다. 또한 전통농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토양 작물 관리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이 거의 없이 농민이 직접 실험 대상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들이 있지만 민간과 정부와 농민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친환경농업 정책과 생산, 인증, 유통 시스템이 이제는 초기 단계에 도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생산, 인증, 유통 시스템에 대한 경험과 기술적인 혁신이 따르지 않는 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2000년 5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유기식품의 생산, 가공, 유통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최종 확정하였다. 그러나 유기농업 기준이 완성된 것이 아니다. 세계 다른 나라들 역시 시행 초기 단계로서 자국에 맞는 기준을 확립해나가는 진행중인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맞는 유기농업 기준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우리나라의 기후 환경과 지역의 전통을 잘 접목하여 발전적인 방향을 수립하는 것이다. 결국은 소비자가 동의하는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농민과 소비자가 동의하는 지향점은 결국 유기농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친환경농업의 성공 열쇠는 첫째 안전한 농산물 생산 기술을 확보하고, 둘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을 확보하여 교육, 훈련을 하고, 셋째 사람과 자연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넷째 꼭 필요한 유기농자재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세워 놓고 정부와 민간단체와 농민 간의 정책과 기술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유기농업을 특수한 몇몇 농민의 과제가 아닌 전 국민의 생활상의 과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국내 친환경농업은 생산, 인증, 유통 등에서 역량이 매우 미흡한 실정이며, 이러한 여건이 충분하지 못해 친환경농업의 확대가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친환경농업의 역량 구축을 위한 지원과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 하나의 농법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현장 연구가 더욱더 활성화 되어야 한다. 쿠바 농업에서는 현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연구는 연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장 중심의 연구는 연구 기관이 중심에 서는 것이 아니라, 의욕 있고 현장기술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민간단체와 농민들이 앞장서고 정부나 연구 기관이 지원하는 시스템이 바람직하리라 본다. 이제 우리의 친환경농업도 새로운 시스템과 새로운 현장 전문가들과 의욕 있는 농민들이 필요한 시기이다.
Ⅱ. 부문별 현안
1. 정책 부문
우리나라는 전통농업, 가족농 중심의 구조가 몇십 년 동안 급격히 파괴되어 농약·화학비료 등 외부 투입자재에 의존하는 농업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농업, 생태, 생명 문제는 총체적인 위기에 있다.
우리나라의 농업정책은 관계의 복원에 관건이 달려 있다고 본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농업 본연의 모습으로 복원시켜야 한다. 전통농업과 현대기술을 잘 접목하여 발전시키는 것이 생태순환의 원리이다. 농민과 도시의 결합, 지역사회의 총체적 주체가 농업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지역농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지역의 유기적인 물질순환 시스템 정착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지원과 육성, 지역 정서, 에너지 순환체계까지 포괄하는 종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경종농업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유기축산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지역농업은 유기적 결합이 필요하다. 지역농정이 농업 중심에 있도록 지자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 화석연료 중심의 기계화 등이 자생력을 고갈시킨다. 에너지 원거리 수송을 전제로 하는 농업은 지속되기 어렵다. 가족적 소농 중심의 유기농업으로 바꾸어야 한다. 종자 문제, 유전자조작(GMO, GEO)식품, 수입농산물 등의 총체적 관리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농촌 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농촌은 붕괴되어 가고 있다. 농업종사자에 대한 병역특례, 국토관리원, 귀농자 지원문제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실질적인 소득보장을 위한 직불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WTO 체제에서 직불제가 없으면 소득보장이 어렵다. 현행 직불제를 확대해야 한다.
친환경농업 정책 부문에 대해 많은 과제가 있지만 우선적으로 함께 논의할 사항은 친환경농업이 추구하는 농업의 목표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친환경농업의 개념에 따른 저투입농업인가 아니면 원칙적인 유기농업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민간단체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고, 농촌진흥청과 농림부는 농약 비료를 적정하게 사용하는 것을 친환경농업으로 정의한다.
둘째 수입유기농산물 문제이다. WTO 체제에서 농산물을 공산품이나 서비스와 같은 교역 대상으로 볼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생산할 수 없는 유기 커피, 유기 설탕 등의 수입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원거리를 이동하는 교역을 유기농업의 본질적인 차원에서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
2. 생산 부문
WTO체제, FTA협상 등이 이루어지는 농업 상황에서는 가격 격쟁보다 품질경쟁·고품질·안전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정부의 농정 목표 중 첫째는 친환경농업 육성이다. 그렇게 하려면 실제로 친환경농업을 육성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과연 어떤 실적이 있는가. 많은 농민들이 친환경농업을 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의식 있는 극소수의 농민만 하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생산량이 전체 농산물의 3% 정도라고 하는데, 그중 60%는 저농약이므로 유기농산물은 전체 농산물의 1%도 안 되는 셈이다.
약 10년 전부터 계속 ‘친환경’, ‘고품질’, ‘안전농산물’을 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당위성을 이야기하고 모두가 동의하면서도, 실제로 농가에서 실천을 하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유기농업을 하면 제초 등 노동만 늘어나는데 관행농업보다 수익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고, 둘째 하고자 하는 농민들도 구체적인 실천기술을 잘 모른다는 것, 셋째 퇴비 등 자재사용의 신뢰 문제, 넷째 ‘어떻게 팔 것인가?’ 하는 판로 개척의 문제가 있다.
이 중에서 유기농업 기술은 어디 가서 배울 데가 마땅치 않다. 누구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 유기농업 기술 교육이란 것이 지금은 단체로 선진지 견학을 하는 정도인데, 농업기술이라는 것이 지역에 따라 안 맞을 수 있고 여러 가지 위험부담이 따른다. 실제로 유기농업을 받아들여 실천하는 농가마다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이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농법에 대한 문제 중 지금 우렁이농법이 문제가 되고 있다. 과연 우렁이가 월동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있는지, 우렁이가 제초제보다 인간과 생태계에 더 많은 피해를 남기는지 검토해 봐야 한다.
종자, 상토, 종자소독 등 자재 사용에도 어려움이 있다. 시중에서 유기상토를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밑거름, 퇴비, 육묘기술, 벌레 등 산적한 문제도 많다. 유기농업이라고 그저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구체적으로 자재와 기술을 접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많은 유기농업 자재들이 체계화되지 않고 검증되지도 않으며 소량생산이므로 비싸다. 국가에서 지원하고 지역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시범포를 마련하여 지역에 맞는 유기농업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축산분뇨를 어떻게 자원으로 만들 것인가의 문제를 지적한다. 2005년부터는 코덱스 기준에 따라 유기농업에는 공장형 축분을 사용하지 못하는데, 우리 기준에서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공장형 축분을 자원으로 볼 것인가 폐기물로 볼 것인가를 논의해 보아야 할 것이다.
3. 인증 부문
가. 분석 성적에 의존하는 인증에서 탈피해야 한다.
단속을 목적으로 검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증의 적합 여부를 결정하는데 농약 잔류 검사 등의 성적서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나라 유기농업 발전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크며 안전농산물 생산 시스템에는 너무나 위험한 제도이다.
농약잔류검사의 경우 지금까지 개발된 농약의 성분은 800여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신의 분석 장비를 갖추더라도 분석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분 수는 200종 미만이다. 실제 흙살림의 경우도 저농약인증을 받은 농산물의 농약 잔류 검사를 해본 결과 ‘농약불검출’ 판정을 받은 경우가 많다. 농약을 사용한 농산물인데도 농약 검출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수질검사와 토양중금속검사의 경우도 현실과 맞지 않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수질검사의 경우 농업용수 이상의 수질을 요구하고 있고, 토양도 토양 오염 우려 기준보다 양호한 성적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수질과 토양의 기준은 관행농업의 기준으로서 기준 미달의 검사성적이 나왔다면 관행농업도 할 수 없는 악조건의 땅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공장지대 같은 큰 오염원이 있지 않은 이상 이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경우에는 육안으로도 인증조건을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없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농가가 분석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인증제도는 농가는 물론 소비자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취약한 제도이다. 정부인증의 경우 이러한 성적서들이 인증을 하는 중요한 근거자료가 되겠지만, 오히려 인증이 부적합한 농가에 대해 인증적합의 근거만 제공할 수 있다.
나. 선진국은 시스템 인증이다.
실제 일본의 AISSAC 등 국제 인증기관의 경우도 인증기관이나 농민이 심사과정에서 분석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단속기관이 유통과정의 농산물에 대해서는 하지만 심사과정의 분석은 전혀 하지 않는다. 심지어 농약이 검출되었다고 하더라도 농약이 검출된 경위에 대해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인증을 계속 유지해 준다고 한다. 이미 선진국은 분석에 의존한 인증이 아니라 시스템(농가의 운영방식과 생산자의 자질, 물리적인 환경 등 농업생산 시스템) 인증으로 자리잡았다.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농산물을 제공하기 위해 관계기관이 단속을 하는 것은 강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유통과정이나 생산과정에 불시 방문 등을 통해 인증에 부적한 요소를 찾아내는 단속은 강화하되, 인증심사 과정에서는 생산자의 영농 시스템을 꼼꼼히 체크하고 기록 상태와 경력, 자질, 수확물 관리 상태 등을 정밀히 조사하는 것이 올바른 인증심사 방법이다.
다. 민간인증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친환경농업육성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7월1일부터 시행되는 것은 농민이 농약잔류검사 비용까지 부담하도록 한 것이며, 인증심사를 철저히 분석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인증 제도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고 본다.
전 세계의 인증은 이미 민간인증의 시대가 되어 제도가 정착되고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기준을 뛰어넘는 기준을 만들어 철저히 자국의 환경·소비자·생산자 보호에 나서고 있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나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IFOAM)의 생산·인증지침(GUIDELINES)의 어디를 보더라도 인증을 위해 분석을 한다는 이야기는 없다. 서류만을 중요시하여 분석을 해야 인증이 된다는 것은 후진국형 발상이다. 분석은 단속을 위해 필요한 것이며 인증 심사의 절대적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것은 인증을 ‘민원’ 수준으로 바라보는 정부의 마인드(Mind)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코덱스나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의 기준을 이해하며 우리나라의 농민과 소비자, 그리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민간단체(NGO)이다. 우리나라의 인증제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은 민간인증기관에게 있다.
정부가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를 발전시키고 농업과 농민, 나아가 소비자와 환경을 지킬 의지가 있다면 민간인증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제대로 된 인증기관과 인증심사원을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유기농산물 수·출입 시대에 우리 농민이 살아남을 수 있다.
4. 유통 부문
유통이 잘 되려면 생산을 잘해서 품질 좋고, 인증제도를 통해 관리가 잘 되고, 물류 인프라 등이 잘 정비되고, 공익성이 붙어 주어야 한다.
농림부 자료를 보면 친환경농산물 판매액이 2003년에 4천억 원으로 늘었는데, 어떤 유통경로를 통해서 판매가 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자상거래, 생산자조직, 소비자조직을 통한 직거래는 규모가 커지고 있고 전체 유통 중 40%까지 확대되었다.
최근 전문유통업체에 의한 백화점 판매 등 친환경농산물의 유통경로가 다양해지고 있다. 직거래는 가격과 유통마진 측면에서 친환경농산물을 팔아서 관행보다 더 버느냐 아니냐의 문제보다는, 일반 유통 방식보다 생산자 의견이 많이 반영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생산비의 10∼30%를 보장하는 높은 수준이다.
직거래단체 중 일부는 생산비 부분을 정확히 뽑지 못하고 관행과 비교 산출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앞으로 친환경농산물 가격을 어떻게 해야 정당하고 지속 가능한지, 농가소득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형마트 매장의 경우 쌈채소 위주로 생산자가 코너를 맡고 유통업체에 수수료를 20∼30% 정도 주게 되어 실제 유통마진이 너무 높아 소비자가 너무 비싸게 느낀다. 또 매장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일반농산물을 함께 취급하기도 한다.
유통 부문에 대한 또 하나의 과제는 친환경농산물 소비자 가격을 인하하면서 소득보장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일반유통의 근본적인 목적은 많이 남기는 것이지만, 직거래의 목표는 이윤보다는 안전한 농산물, 친환경농업을 확산·지속하도록 하는 것이다. 직거래 유통의 전체 비율이 높아져야만 생산, 인증, 기타 가치의 문제가 이야기될 수 있다. 공익성을 위해 전체 유통에서 직거래가 20∼30% 정도는 계속 점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친환경농산물 유통의 특징과 문제점을 이야기하자면, 안정적으로 생산 가능해야 하고 품질 면에서나 관리 면에서 안정적이어야 한다. 인증 문제는 유통 측면에서 품질관리와 신뢰도를 확보하는 문제이므로 중요하다. 친환경농산물은 일반농산물과 달리 물류인프라가 없다. 다품종 소량 생산에 맞는 인프라가 없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유통활성화 방안으로는 생산관리를 위해 작목반 중심의 집단적 생산조직을 육성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인증제도 안정화와 소비자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친환경농산물은 안전한 먹을거리일 뿐 아니라 공익성을 갖는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
학교 급식에서 친환경농산물 우선 구매, 유통 관련 인프라, 산지와 소비지를 연계한 환농연 공동물류센터 설립 등이 필요하고 지원되어야 한다. 친환경농업이 아무리 잘 되어도 썩어서 온다거나 포장단위가 엉망이면 제대로 안 산다. 예냉시설, 선별 포장, 브랜드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정보처리시스템 구축도 필요한 사항이다.
Ⅲ. 쿠바 유기농업에서 배우자
카스트로와 살사의 나라, 강대국 미국의 앞마당에서 수십 년간 봉쇄와 협박 속에 생존해온 쿠바, 한반도 크기만한 쿠바가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 환경운동가와 생태학자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가 최악의 식량 위기를 딛고 미래 생태도시의 새 모델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쿠바는 카리브해에 있는 섬으로 인구는 1,100만 명이다. 수도 아바나시에는 218만 명이 살고 있는데, 도시 거주자가 약 80%를 차지하는 나라이다.
1959년 쿠바혁명에 성공한 카스트로는 미국의 경제봉쇄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커다란 변혁에 직면한다. 그리하여 ‘프로젝트 X’라는 도시농업 계획을 수립하여, 화학비료나 농약,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 유기농법만을 통해 도시농업을 시작하여 10년이 지난 지금 인류 희망의 모델이 된 것이다. 도시농업 시작 이전 43%에 그쳤던 쿠바의 식량자급률은 2002년에 95%로 뛰어올랐고, 총생산성도 94년을 기점으로 예전 농업생산 실적을 크게 웃돌았다. 쿠바의 유기농업 운동은 ‘늘푸른 농업혁명’으로 인류를 살리는 농업혁명이었다.
사적 경영을 허용한 가족농 중심의 토지 개혁, 직거래 중심의 시장 개혁, 지렁이 분변토 따위를 활용한 흙살리기 등 환경친화적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여 탈석유문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나가는 ‘혁명적 상황’을 쿠바가 창조한 것이다.
거기에 두터운 연구·기술진과 농업의 규모를 작게 만들면서 ‘협동조합 정신을 부활’시켰고, 권력의 분산과 풀뿌리 권력의 성장, 지방분권, 지역 커뮤니티의 활성화가 밑거름이 되었다. 도시민들의 농촌지원봉사 조직, 귀농 희망자의 대대적 모집 등도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들 수 있다.
쿠바의 유기농업이 10여년이라는 짧은 역사 속에서 완전 정착한 배경에는 제도의 수립과 집행은 물론 보급에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 연구기관의 집중적인 연구와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쿠바형 도시농업은 주로 흙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서 흙이 좋지 않은 지역은 흙상자를 이용해서 재배를 하고 있고, 흙이 좋은 지역도 흙을 경계지어서 농사를 짓는다. 흙상자 재배방식(오가노포니코)은 흙의 유실을 막을 수 있고 특히 유기물, 질소나 인의 유실이 없어 물의 오염을 막을 수 있으며 첫해부터 유기농업이 가능하다. 흙 만드는 방법은 토양 검정 후 퇴비를 보강하는 방식으로 하는데 지렁이 퇴비는 일반 퇴비보다 10kg이 더 증수되었다고 한다.
연구된 미생물들은 모두 현장에서 이용되고, 현장에서 이용되지 않는 연구는 연구로 취급되지 않고 있다. 국가가 운영하는 미생물연구소는 종균 관리, 배양 방법 등을 주로 실험 연구하고 있다. 미생물연구소는 종합 방제 중심의 각종 생물 농약을 개발하고 있다. 생물 농약은 천적 곤충의 이용, 미생물 이용, 식물성 농약 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토양연구소는 주로 토양 분류, 침식, 염해 등에 대해 연구하는데, 각 지방의 연구 지원과 지역과 연계된 연구를 하고 있다. 생물학적·유기질 자재 및 살충제로는 주로 님(Neem)을 번식시키고 대량 육종하여, 님케잌 등 님나무를 활용한 유기농업 적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자연적 살충나무인 님은 인도로부터 도입, 증식하여 보급하고 있다.
윤작에 대해 연구하여 작부체계에 적용하고 있으며, 옆 작물과 좋은 관계에 있는 작물을 심는 혼작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파-비트-메리골드를 심어서 1㎡당 20kg(ha당 200t) 정도를 생산하고 있고 지역에 따라서는 1㎡당 35kg까지 생산하는 곳도 있다.
제초제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돌려짓기로 잡초를 잡고 있다. 콩과 옥수수를 돌려지으면 그늘이 생겨 키가 작은 잡초를 막을 수가 있다. 고구마 같은 피복성 작물을 심음으로써 다년생 잡초를 억제할 수 있다.
병충해 방제에는 기생성 천적을 사용한다. ha당 8,003만 마리를 사용하는데 종류도 많고 효과도 우수하다. 천적을 이용하는 기술의 핵심은 생태계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다. 아바나 중심부에 위치한 농민시장은 농가가 직접 팔 수 있는 판매시장이다. 현지 농장에서 판매하지 못하는 것은 이 곳에 와서 직접 판매를 하고 있다. 아바나 시에는 35개의 판매 장소가 있고 2.5% 수수료를 내며 보관비는 하루에 20페소이다. 판매하는 사람들이 가격을 결정하여 판매할 수 있다.
쿠바의 농업은 유기농업이 결코 식량의 생산성 문제 즉 세계의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어설픈 학자들의 말에 과감히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호세 마르티(1853~1895, 정치가, 문필가. 쿠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는 데 활약한 쿠바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로서 ‘쿠바의 사도’라 한다.)의 “아침에 펜을 잡으면 오후에 밭을 갈아라.”는 가르침을 교육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에서도 농업교육이 의무이고 대학생도 1주일에 하루씩 농촌에서 일을 하도록 하여 학생들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실천하고 있었다.
석유와 같은 지하자원도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바나 시민이 경험한 위기는 석유문명을 기반으로 한 이 세계의 모든 도시가 머지않아 직면하게 될 사태의 예고편이다.
이제 농업이 버림받고 별 볼일 없는 산업이 아니라 우리나라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기간산업으로 우리 국민들이 인식할 때 벼랑 끝에 선 농업은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Ⅳ. 한국 농업의 현실과 앞으로의 대응 방안
지난 2월 16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우리나라 농업, 농촌, 농민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을 파국으로 몰아넣는 FTA 뇌관이 드디어 터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기업과 도시민을 볼모로 농촌 지역에 기반을 둔 국회의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회의원 162명이 찬성하여 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취임한 지 1년밖에 안 된 참여정부와 차떼기 정당인 한나라당이 서로 협력하여 농민을 충격과 불안 속에 몰아넣은 것이다. 지금까지 만나기만 하면 싸움을 하던 국회의원들이 농민 죽이기에 서로 앞장서 협력한다는 사실은 정말 웃을 노릇이다.
지금 농촌 현장에서는 크게 세 부류의 농민들이 자기 입장을 정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첫째는 정말 희망도 없고 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떠나는 농민들이고, 둘째는 농촌 현장에 있으면서도 거의 자포자기하는 농민들이고, 셋째는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열심히 친환경농업을 하고자 하는 농민들이다.
지난 40여년 간 우리나라 농업 정책은 증산을 위하여 비료와 농약을 엄청나게 투입하여 왔다. 그 결과 쌀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쌀을 제외한 다른 부문, 물, 공기, 흙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하여 쌀 자급을 이루었지만 농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농촌 자체의 붕괴와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전개해 온 농업 정책이 잘못되었든지 그것을 따라온 농민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든지, 둘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친환경농업이 우리나라 농업의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농업 정책과 농민들의 변화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2004년도 농림부 예산은 모두 8조 8,824억원이고 그중 친환경농업정책과 예산은 5,311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6.0% 정도이다. 친환경농업정책과 예산 내역을 보면 토양개량사업이 360억원, 폐비닐수거 지원사업 26억원, 울진 세계 친환경농업 엑스포 지원 10억원, 친환경농업 직접지불 55억원, 논농업 직접지불 4,810억원, 친환경농업 육성사업 51억원이다. 이 예산 중 친환경농업 육성사업에 실제 사용되는 금액을 보면 농림부 예산의 0.6%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말로는 경쟁력 있는 친환경농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 돈의 쓰임새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돈이 많이 투입된다고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비용은 투입해야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농업 정책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우리나라 농업의 희망을 만들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친환경 유기농업이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정부가 진행해온 모든 방식 시스템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정부 중심, 기업 중심의 농업에서 농민 중심으로 모든 정책과 법을 바꾸어야 하고 농업이 이 사회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철학과, 정신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세계는 이미 식량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작년 후반기부터 시작된 중국의 세계 곡물 수입 영향이 우리나라에도 큰 여파를 미치고 있다. 곡물 값의 폭등이 몰고 올 영향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핸드폰 팔아서 곡물을 수입해 먹으면 아무 걱정 없다는 수입개방론자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따라서 식량 문제, 고용 문제, 환경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바로 친환경 유기농업인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세워놓고 정부 안에서의 협력(교육부, 국방부, 농림부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아이들 급식도 중요하지만 군인들의 급식도 농업을 살릴 수 있는 대안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또한 정부와 민간단체의 협력, 농민과 농민 간의 협력, 농업을 중심에 두는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 도시민의 농촌지원 봉사 조직의 결성, 농촌 귀농 희망자의 대대적 모집과 현실적인 지원책 마련, 흙과 물과 공기를 살리기 위한 도시민들의 협력과 지원책이 절실히 필요하고, 유기농업이 특수한 몇몇 농민과 도시민의 과제가 아니라 전 국민의 삶 속에서 유기적인 삶이 녹아들 수 있도록 국민 생활과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우리 농업의 기본 목표와 방향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때다. 지금의 방식, 시스템을 모두 바꾸어 환경을 살리는 농업 정책 방향으로 큰 변환이 되어야 한다. 먹을거리와 농업에 대해서도, 이 흙과 물과 공기에 대해서도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성숙한 사회가 하루 빨리 되기를 기대해 보며 농촌 현장에서도 끊임없는 변화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유기농업을 전 국민 생활과제로
우리 농업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제대로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정말 궁금하다. 우리 농업만 생각하면 과연 무엇이, 왜 이토록 어두운 모습만 있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 농업을 둘러싼 바깥세상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을 때 우리는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심지어 뒷걸음질을 쳐왔다. 94년부터 시작된 농어촌 구조 개선사업의 하나로 시작된 경쟁력 강화 사업은 규모화, 첨단화라는 이름 아래 엄청난 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았다면 그 엄청난 유리온실을 지을 엄두를 내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파산한 40~50대 농민들의 절규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이것은 농민을 상대로 한 다국적 기업들의 치밀한 농민 망하기 정책이었다고 말한다면 정부 당국자들에게는 너무 가슴아픈 얘기일까? 따지고 보면 정부가 지원한 보조정책은 실은 농업, 농민에게 지원한 것이 아니라 농민을 볼모로 한 기업에 지원한 산업정책일 뿐이었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지금까지 10년 동안 농업에 투자한 금액이 57조원이라고 한다. 한번 계산해보자. 그것을 현재 우리나라 농민 숫자로 나누면 1인당 1,600만원이라는 금액이 나온다. 그 정도의 금액을 농민들에게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4인 가족 기준으로는 6,400만원 정도가 지원된 것이다. 현재 농가당 빚이 3,000만원 정도 된다고 하니 빚을 갚아주고도 3,400만원이 남는다. 이 투자금액을 농민들에게 현금으로 지원했다면 이런저런 골치 아픈 문제가 훨씬 줄어들지 않았을까? 지난 10년 동안 농업에 대한 정책목표와 방향 없이 표류한 대가가 너무도 엄청나 가슴이 아프다. 그렇지 않아도 영세한 우리 농가가 맨몸으로 다국적 기업과 경쟁을 하도록 협상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다.
문제는 이런 무차별적인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에만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농업 스스로 갖고 있는 문제점을 철저히 진단하고 변해가야만 앞으로 닥칠 시장개방의 회오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농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은 변화된 것이 별로 없다. 지금까지 정부에서 투자한 돈이 규모화 되고 기반시설을 갖춘 쪽으로 투자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걱정이 없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과 같은 석유 중심의 농업으로는 우리 농업의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분명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엄청난 기름을 사용하는 공장형 농업 시스템으로는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업화, 규모화도 좋지만 이것을 지탱할 인력이 없는 것을 어찌하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놔도 사람이 없는 농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유기식품법 제정이 필요하다
시장 개방 시대에 친환경농업도 경쟁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넓은 대륙과 인적자원을 무기로 한 중국의 친환경농업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 중의 하나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유럽 등의 유기농업도 대단히 위협적이다. 장거리 운반에 대한 문제도 식품 가공과 저장 기술이 발달한 선진국에게는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밀 듯이 밀려들어올 외국의 ‘유기농산물’과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산물’ 중에 소비자는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이제 정부가 법적 근거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농업 육성 정책에 대하여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되었다. 정부가 1996년에 들어서 추진하기 시작한 친환경농업에 대한 정책은 시대적 추세를 따라가기 위한 당연한 결과였다.
환경에 대한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계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란 개념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 일환으로 정부도 친환경농업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 ‘21세기를 향한 농림수산환경정책’을 수립, 환경보전형 농업에 관한 중장기대책을 세우게 된 것이다.
뒤늦게 시작한 정부 차원의 친환경농업 정책은 이런 민간의 유기농업운동 흐름을 상당히 반영한 듯하지만 유기재배의 원칙을 지켜온 민간의 노력에서 상당히 후퇴한 것이 사실이다. 2001년 개정된 친환경농업육성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친환경농업이란 유기재배, 전환기유기재배, 무농약재배, 저농약재배에 의한 농업이다. 철저한 유기농업보다 농약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도 기준 이하로만 사용한다면 친환경농업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관행농법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농촌의 현실을 반영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철저히 유기재배를 원칙으로 한 민간의 수많은 노력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친환경농업이란 개념을 적당히 확대해석함으로써 관행농업을 하고 있는 농민들을 친환경농업으로 어느 정도 유도해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매모호하고 복잡한 개념으로 농민은 물론 소비자들에게도 혼란과 불신을 주고 있다.
친환경농업에 대한 지금의 개념에 대해 더욱 원칙적인 유기농업의 발전을 위한 ‘유기식품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유기농업의 원칙에 대한 육성이 없이, 농약을 일정량 사용해도 괜찮다고 하는 친환경농업이란 결국 세계시장 앞에 부딪히면 어떤 경쟁력도 얻지 못할 것이다. 유기농업과 저농약재배를 같은 수준으로 볼 수 없다. ‘저농약’이란 농약을 줬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고 ‘무농약’이란 화학비료를 줬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 이런 것을 친환경농업으로 보고 허용한다면 국제수준의 유기농업은 꿈과 같은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친환경농업의 발전도 결국은 유기농업이 발전해야 따라서 발전할 수 있고, 유기농업의 발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철저한 유기농업 생산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앞으로 국제수준의 유기농업에 도달하기 위해 유기식품법의 제정은 필요한 일이며, 정부는 철저한 유기농업을 발전시킬 목표를 갖고 장기적인 계획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며 유기식품법에는 생산, 가공, 유통, 자재 등을 포괄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중소규모 가족농 육성
우리나라의 유기농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유기농업에 대한 철저한 원칙이 필요하다. 그것은 유기적 자재를 사용한다는 것, 오염 물질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는 화학적 기준, 행동과 윤리적 원칙뿐만 아니라 원칙적 개념 도입도 필요하다.
유기농업은 생태순환의 개념을 필요로 한다. 유기농업이란 단순히 소비자의 건강만을 생각해서 오염 없는 먹을거리 상품을 만들어 내는 행위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오염을 최대한 줄이고, 유기농산물을 둘러싼 각종 사회 여건 즉 유통체계, 소비자와의 유대, 공동체성까지를 포함한다.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기업식 경영을 통해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할 경우 거기에 투입하는 유기질 퇴비 등 자재의 공장식 생산을 가져오게 된다. 말하자면 철저한 유기농업의 개념에서 볼 때 농가에서 직접 유기축산을 실천하면서 축산 분뇨를 이용해서 유기질 퇴비를 만들어 유기재배 포장에 투입하는 이른바 순환식 농업의 개념과는 구조적인 차이가 있다. 또한 익명의 소비자에게 일단 팔면 그것으로 거래는 끝이 나고 관계는 단절된다.
유기농업의 기본개념은 순환이다. 유기축산을 통한 퇴비를 포장에 투입하고 생산한 작물을 가축의 사료로 이용함으로써 순환식 생산체계를 이루어야 한다. 또한 소비자와 순환적 관계가 유지됨으로써 지속 가능한 경제체계를 이루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사회가 지속가능한 체계를 이루게 됨으로서 농촌의 자립성과 지속 가능성을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순환적 개념을 현실화하는 데는 기업농보다는 가족농이 유리하다. 우리나라 농가의 거의 대부분은 몇천 평 규모 많아야 몇만 평 규모의 중소농이다. 이러한 가족농에 의해서 지역사회가 유지되고 있고, 산지가 많은 지리적 여건상 앞으로도 당분간은 가족농 방식에 의해서 농업체계는 이어질 것이다.
유기농업을 좀더 원칙적으로 실천할 수 있고, 도시와 농촌간 교류를 촉진하여 직거래를 통한 지속 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족농 방식의 유기농을 육성해야 할 것이다.
도시 소비자들의 깊은 반성과 노력
제일 먼저 먹는 문제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철에 나는 음식, 우리 기후에 맞는 음식 시스템으로 바꾸어놓아야 한다. 한겨울에 맛있는 과일을 먹기 위해서는 엄청난 기름을 때야 하고 수입된 벌로 수정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문제 해결의 접점을 찾을 수 없다.
다국적 기업이 만들어낸 제초제나 농약을 사용한 먹을거리에 대해 도시소비자들의 깊은 반성이 요구된다. 결국 도시소비자들이 우리의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열쇠를 쥐고 있다.
농업 정책 기본 방향에 대한 근본 검토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유기농업에 대해서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유기농업이 발전해야 친환경농업이 발전할 수 있다. 정부는 물론이고 친환경농업을 하고 있는 생산자들도 ‘유기농업’이란 목표를 가지고 생산에 임해야 할 것이고, 소비자들 또한 생산자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국 그것은 대규모 기업적 농업이 아닌 중소규모 가족농 방식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신뢰의 관계로 맺어지는 직거래 방식으로 적합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 농촌 문제를 풀어나갈 친환경농업 정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 농업의 기본 목표와 방향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의 방식, 시스템을 모두 바꾸어 환경을 살리는 농업 정책 방향으로 대변환이 되어야 한다. 당국자는 이런 방향으로 한번쯤 진지한 고민을 해보길 진심으로 권한다.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실천운동
먹을거리와 농업에 대해서도, 이 땅과 물과 공기에 대해서도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유기적인 삶이 전 국민의 삶 속에서 꽃피울 날이 하루바삐 다가오길 기대하면서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실천운동을 제시해 본다.
1. 정책면 : - 친환경농업육성법 개정
- 유기식품법 제정
- 시·군 친환경농업육성 조례 제정
- 학교급식 조례 만들기
- 물·공기·흙을 살리는 유기농가에게 직접 지불하는 정책 만들기
- 수입 유기농산물 관리 방안 마련
- 유기농자재 표시제 또는 인증제 마련
2. 생산자 : - 윤작·간작·혼작 실천
- 제초제 사용 안 하기
- 토종종자 찾기
- 논 생태계 되살리기
- 전통농업과 과학기술의 결합
- 자급사료를 활용한 가축 기르기
- 음식물찌꺼기로 퇴비 만들기(지렁이 활용)
3. 소비자 : - 텃밭 가꾸기
- 도시 농부 운동
- 가공식품에 국산농산물 썼는지 확인하기
- 땅 1평 살리기
- 무농약 쌀 먹기
- 농촌 체험 운동
- 지역 화폐 쓰기와 물물교환하기
4. 인증 : - 정부인증에서 민간인증으로
- 수입유기농산물 인증기관 설립
- 가공품·취급자 인증제도 마련
5. 유통 : - 직거래 시장 활성화
- 유통 마진율 줄이기(20% 안팎)
6. 기타 : - 흙살림순환농법 실천(농민, 소비자, 지자체 함께 참여)
유기농업을 전 국민 생활과제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것을 하나하나 실천해야 한다. 농업만 바뀌어서는 안 된다. 전체 사회, 생활양식까지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흙살림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 정책이 할일, 생산자가 할일, 소비자가 할일, 아이들이 할일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농업만이 아니라 전체 사회를 어떻게 실천하게 하고 기여하게 하고 이루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Ⅴ. 결론
유기농업의 시스템을 국제규범에 맞추어야 한다. 반드시 미국식·유럽식을 따라가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범에 맞지 않는 것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정에 맞추지 않고 처음부터 편하게 우리식으로 해석해서 한국적 유기농업을 고착화해서는 안 된다. 특히, 자재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적 유기농업은 유기물을 과잉 투입해서 만드는 방식이다.
유기축산에서 나오는 분뇨를 활용하여 유기농업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 3년 전에 이야기되고 친환경농업육성법에 명문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규정은 아무도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사실은 3년 동안 열심히 연구하고 준비해서 실천하자는 의미일진데 농민이나 단체나 정부도 별 관심이 없었다. 이미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뜨겁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UR이후 10년 동안 아무런 준비를 안 하고 있다가 세월만 보냈다. 이제 내년이면 발등의 불이 되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 유기농업 분야의 시스템을 국제적인 규범에 맞추지 못하면 유기농업의 발전은 어렵다. 준비하지 않고 요행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대원칙을 정해놓고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내 친환경농업은 정책·생산·인증·유통 들에서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고, 환경농업단체 또한 제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여건의 불충분으로 친환경농업의 확대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농민과 민간단체, 정부가 같이 합심 노력하여야 하며 당면 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농민을 중심에 두고 시스템을 새로 짜야 환경농업이 우리 농업의 대안이 되리라 생각된다.
자료: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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