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ow Food, 치즈, 파스퇴르 우유 그리고 식품 안전
조회661우유를 공동으로 집하하면서부터 산업화 과정에 들어섰다.
우유를 저온살균 처리하는 파스퇴르 공정은 이러한 산업화 과정에서 살균 및 유제품 판매기간을 연장시키는 방편으로 도입되었다. 오늘날 산업국가에서는 파스퇴르 우유로 치즈를 생산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치즈 종주국인 프랑스에서도 무가공 원유(raw milk)로 치즈를 생산하는 비율은 17% 정도에 불과하다.
친 파스퇴르 진영과 원유사용옹호 진영의 로비는 항상 양립해 왔다. 하지만 식품안전관련 파동이 일어날 때마다 식품안전 및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무가공 원유로 치즈를 생산하는 것을 금지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미 1990-1992년 사이에 EU내 무가공 원유로 생산된 치즈의 식품 안전성에 대해 매우 활발하게 논의되었고, 또한 Codex Alimentarius(국제 치즈거래 관련규정을 만드는 기구)는 모든 낙농제품 생산에 의무적으로 파스퇴르 공정을 도입하는 제도를 심각하게 검토한 적도 있었다.
치즈에 박테리아가 다수 존재하고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생물학적 다양성을 연구하는 Slow Food 재단 회장이자 무가공 원유로 생산된 치즈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인 Piero Sardo씨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미생물에는 유익한 것과 유해한 것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즈를 단순히 식품안전 상 위험한 음식(dangerous food)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현상이다."
실제로 원유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박테리아는 유익한 것으로서, 이들에 의해 치즈 각각의 독특한 특성과 향을 살린 치즈생산이 가능한 것이다. 반면, 치즈생산 전 단계에서 우유를 파스퇴르 처리하면 많은 (유익한) 미생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균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함과 동시에 치즈생산 및 숙성 공정에서 인위적으로 투입할 수밖에 없는 배양 박테리아가 창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로써 문제 해결보다는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낸다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증거들도 있다.
실제 치즈관련 식품안전파동은 대부분 파스퇴르 유유로 생산된 치즈와 깊은 연관관계가 있다. Vermont 대학 미생물학 전문가 Catherine Donnelly씨는 ‘숙성우유로 생산된 치즈와 질병발생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에서 숙성우유로 생산된 치즈가 파스퇴르 우유를 사용한 치즈보다 월등하게 안전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파스퇴르 우유 사용의 법제화를 통한 식품 안전성 제고라는 논리에 의문점이 제기되었다.
무가공 원유가 파스퇴르 우유보다 비타민 B6, 면역항체 혈청 및 효소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건강에 더 좋다는 일부 주장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 국립 경종학 연구(INRA)에 따르면 파스퇴르 우유가 치즈 숙성 시 생화학 및 미생물학적 반응 내용을 변경시켜 치즈의 물성 및 고유의 향마저 변하게 만든다고 결론을 내렸다.
Terroir(포도주 제조 환경)에 따라 포도주의 맛이 다양해지는 것처럼, 젖소의 종자, 방목지의 풀 종류. 생육환경, 치즈생산지역 고유의 제조 공정. 효모배양방법. 지역 고유의 미생물 등등에 따라 치즈의 종류와 맛은 그야말로 천차만별로 다양화되며, 이는 오직 무가공 원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파스퇴르 우유로 생산한 치즈는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우유를 한 곳에 모은 후, 연구실에서 배양된 특정효모로 숙성시키고, 판매기간을 연장을 위한 제반 표준화 공정을 통해 대량생산된다. 따라서 무가공 원유로 생산한 치즈가 지닌 독특한 특성을 파스퇴르 우유로 생산한 치즈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치즈 하나를 고르는 행위가 미치는 영향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는 단순히 맛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물건 하나 고르는데도 더더욱 고민할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컨데 ,우리가 프랑스 Bourgogne산 Epoisses 치즈를 구매하는 것은 수천년 동안 맥이 이어져 왔을지 모르는 그 지방 고유의 치즈생산 전통 및 환경, 자연과 방목 환경, 지역민들의 생활방식 등을 그들이 계속 지켜나갈 수 있도록 측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출처: Financial Times, 2006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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