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값 인상 '천장'이 없다
조회665식량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지난 12일 옥수수값이 부셸당(27) 7.09달러에 달했다. 사상 최고치다. 지난 3일 이후 19%나 급등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곡물도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2006년 초 부터 올 5월 말까지 어림잡아 쌀값은 3배 밀값은 2.5배 콩(대두)값은 2배 뛰었다. 특히 쌀값은 올 4월까지 7개월 사이에 두 배나 솟구쳤다.
값이 뛰면서 가난한 나라들은 식량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곡물가격 고공행진이 조금만 더 진행되면 식량을 조달하지 못해 굶주리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과거의 식량위기 패턴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식량 위기는 국제유가 급등과 맞물려 세계 경제에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미국 식량정책연구소(IFRI) 사무총장인 조아킴 브라운은 "마치 한 문명이 최후의 순간을 맞는 듯한 위기감과 스트레스가 많은 나라를 엄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세계 곳곳에서 소요 사태가 발생하고 식량 안보를 위해 수출을 금지하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다.
공급 차질
인류 역사상 식량 위기는 무수히 발생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세계 제2차대전 이후만을 따지면 현재 위기가 두 번째라고 말한다. 1972년 이후 36년 만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 공급 차질이 화근이었다. 72년 기상악화로 주요 곡물 생산량이 수요량보다 3% 정도 부족해 가격이 급등했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말 기준 생산량은 소비량보다 3.4% 부족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현재 곡물 재고량은 급감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곡물 전체 재고량은 2000년 5억9850만t에서 지난해 4억2500만t으로 줄어들었다. 쌀은 2000년 30%선에서 최근 위험 수준인 16% 밑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동안 밀은 39% 선에서 19% 밑으로 옥수수는 11% 선에서 8% 밑으로 줄어들었다. 올 2월 현재 미국의 밀 재고량은 60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공급 차질이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기상 악화다. 미국.캐나다.호주.아르헨티나 등에서 가뭄과 홍수 고온 현상 등 기상 이변이 발생하는 바람에 생산량이 급감했다. 밀과 쌀을 대량으로 수출하는 호주는 극심한 가뭄 때문에 2006~07년 쌀 생산량이 90% 가까이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 탓에 기상이변이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바이오 연료
국제유가 급등은 곡물 시장에도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은 20억t 수준이었다. 이 가운데 1억t이 바이오 연료를 만드는 데 투입됐다. 2005년보다 2배나 많은 양이다. 그럼에도 옥수수 재배 농민과 미 카길 등 곡물 메이저들은 더 많은 농지를 바이오 연료용 옥수수를 생산하는데 돌리고 있다. 곡물을 먹거리용으로 파는 것보다 수지가 더 낫기 때문이다.
바이오 연료에 곡물이 쓰이면서 그 충격은 아프리카.서남아 등 가난한 나라에 집중되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 판매되거나 원조물로 공급되던 곡물이 이제는 선진국의 자동차를 굴리는 데 쓰이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가난한 나라의 식량난은 가중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은 생산비를 올리고 있다.
예컨대 국제 비료 값은 종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3월 말까지 반년 사이에 두 배 정도 뛰었다. 비료를 만드는 석유값이 배럴당 130달러 선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비료 값이 급등하면서 일부 지역이기는 하지만 소농들이 경작을 포기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일은 쌀 생산지인 동남아 지역에서 많이 일어나 쌀값 급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새로운 소비자
몇몇 전문가들은 세계 인구가 늘어나는 바람에 필연적으로 식량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곤 한다. 하지만 세계 인구 증가율은 1980년 이후 낮아진 반면 식량 생산 증가율은 꾸준히 올라갔다. 특히 가축 먹이와 종자를 제외한 식량을 세계 인구 수로 나눠 환산한 1인당 식량지수는 1999년 이후 100을 넘었다. 세계 인구가 이듬해 추수 때까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을 뜻한다. 이는 단순히 인구 측면에서만 최근의 식량위기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같은 국제 기구들은 '새로운 소비자'들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경제발전 속도가 빠른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에서 신흥 중산층들이 식생활 수준을 높이면서 곡물 소비량이 급증하고 있다.
올 4월 FA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6~2007년에 곡물 소비량은 2005년보다 1%가량 늘어났다. 중국과 인도의 중산층은 1990년 전체 인구의 8.6%와 9.7%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말 각각 40%와 30% 수준으로 급증했다. 이들의 식탁에 더 많은 육류와 음식들이 오르면서 육류 생산에 필요한 곡물 소비는 급증했다. 이 기간에 중국의 곡물 소비는 전체적으로 2.2배 정도 늘어난 것으로 FAO는 추정하고 있다.
머니 게임
국제 금융시장에선 위기를 이용해 고수익을 챙기는 세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식량 부족이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가격 급등을 활용해 목돈을 챙겨보려는 투기세력이 곡물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2007년부터 2008년 3월 말 사이에 상품시장(에너지+원자재+곡물)에 밀려든 돈은 4000억 달러(40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돈이 모두 곡물 매매에 투입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금액이 곡물 관련 분야에 투자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곡물 투기세력은 식량뿐만 아니라 브라질의 에탄올 공장 캐나다의 농장 미국 중서부의 초대형 곡물창고 대형 비료 판매회사들을 사들이고 있다. 곡물값이 급등하는 틈을 타 한몫 챙기려는 움직임이 다방면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투기 자본은 곡물 가격이 적정 수준 이상으로 급등하는 요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올 2월 카자흐스탄 정부가 밀 수출을 금지하자 하루 사이에 국제 밀값은 25%나 급등했다. 카자흐스탄이 세계 밀 생산 순위에서 10위 안에도 들지 않고 국제 밀 가격에 충격을 줄 만큼 많은 양을 수출하고 있지 않지만 시장은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국 ETF증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닉 빈코우스키는 "수출금지.제한 조치 등에 투기 세력이 가세해 가격을 올리고 있다"며 "이렇게 급등한 가격은 다시 투기세력을 부르고 값이 재차 상승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그동안 묵혀둔 경작지에 다시 씨앗이 뿌려지고 있다. 경작지 면적이 늘어나는 추세로 돌아설 움직임이다. 또 해충과 바이러스에 강하고 수확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벼와 밀 품종을 개발하는 작업도 다시 시작됐다. 72년 식량 위기 이후 경작지가 늘고 녹색혁명의 바람이 거세게 불던 흐름과 비슷하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과 인도의 '새로운 소비자'를 겨냥해 밀.쌀뿐만 아니라 과일.채소 등의 품종까지 개량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농업의 특성상 생산량이 빠르게 늘어나기는 어렵다. 적잖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때까지 가격 오름세는 이어지고 식량위기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LA aT 센터 (자료원: Korea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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