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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6 2006

NYT의 냉면 예찬(칼럼)

조회663
 

[25 시]NYT의 냉면 예찬



여름날이면 하루에 두끼 이상을 냉면으로 때우는 회사 선배가 한 분 있었다. 평소 식사량이 적은 사람이지만 냉면만은 언제고 곱배기다. 작취미성(昨醉未醒)이면 해장국 대신 냉면육수를 찾았다. 회사 옆 평양냉면 전문 '강서면옥'을 자기집처럼 드나들었고 주인은 아예 사위맞듯 했다. 식당에 들어서면 주문이고 뭐고 없이 일행 머릿수대로 냉면 '한 대야'씩 가져왔다. 값은 '보통'으로 받으면서-.


그런 S선배를 따라 다니느라 여러 사람 냉면에 '중독'됐다. 그 중의 하나인 L이 평양에 출장갔다. 남북대표회담 실무회담 취재차다. 본래는 필자가 가기로 예정된 취재일정인데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정상회담이 전격 합의됨에 따라 필자는 평양 정상회담을 담당하게 됐다. 이에 따라 다른 기자가 거명됐으나 L은 그답지 않게 이번 만큼은 반드시 자기가 가야 한다고 나섰다. L은 대타로 추천해줄 것을 누누이 당부했고 하도 간곡해 그를 천거했다. 그가 밝힌 간곡한 사유란 '본토 냉면'을 맛봐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 뉘라서 이 절절한 애소를 뿌리치랴.


L은 소원대로 평양에 갔는데 다녀와서 한다는 첫마디가 "틀려 먹었다"다. 평양 보내준 턱을 내기 싫어 연막을 치는가 싶어 따져 물었더니 그 유명하다는 옥류관 냉면이 별로였단다. 남쪽의 '개량 냉면'에 길들어져 그런가 싶어 본인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는 감시원 동무를 꼬셔 다른 음식점에 가서 냉면을 주문했더니 이건 냉면이 아니라 '당면탕'이더라고 했다.


L은 원체 물자가 귀해 냉면의 제맛을 못본 모양이므로 앞서의 평양방문은 무효이며 다시 가서 냉면 맛을 확인해야 한다고 우기곤 했다. 실제 90년대 중반 3~4년에 걸쳐 3백만 이상의 북한주민이 굶주림으로 사망했었다.


이처럼 북녘이 원조인 냉면이 한민족 전체가 즐기는 별미가 됐다. 여름철이면 L처럼 냉면을 끼삼는 애호가들이 무수하다. 본래 냉면의 주재료인 메밀은 남쪽에선 구황(救荒) 식품이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은 가뭄으로 모내기를 못하면 벼대신 심어 모자란 곡물을 보충하기도 했던 '하급 곡물'이었고 국수나 묵의 원료였다. 껍질은 베개 속으로 적격이었다. 그런데 메밀에다 적당량의 녹말을 섞어 만든 냉면이 한민족 모두의 사랑을 받는 기호식으로 자리했다. 또 겨울철 별식이던 게 사철음식이 돼버렸다. 불고기.등심구이 다음에 당연히 먹는 것처럼 들어선 게 냉면이다. 그리고 물냉면-평양냉면과 비빔냉면-함흥냉면으로 대별되던 게 열무냉면.칡냉면 등 각종 재료가 첨가되며 다양하게 발전했다. 짬뽕을 식힌 것 같은 '중국식 냉면'은 냉면 축에도 못낀다. 그 개운하고 새콤달콤 산뜻한 냉면 맛의 본령을 모르면서 차가운 국수라는 이유만으로 냉면노릇을 하려들면 섭섭하다.


한국의 또다른 대표 먹거리 냉면이 뉴욕타임스(NYT)에 등장했다.


NYT 19일자 다이닝 섹션은 '여름철 한국의 맛은 길고 시원한 후루룩(Slurp)'이라는 제목으로 냉면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큼직한 '대접에 담긴 물냉면' 사진은 입맛을 돋군다. 옆에는 대동면옥 김정현 사장이 긴 냉면발을 치켜들고 환하게 웃는 사진도 실렸다.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냉면전문점 대동면옥을 방문해 냉면 제조과정과 맛 김사장의 냉면에 얽힌 옛 사연들을 소상하게 기술한 NYT의 냉면특집은 '세계속의 한국' 코리아가 이렇게 컸구나 하는 감회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8월 '김치의 매력(Kimchi Chic)'이란 제목으로 시티섹션 2개면에 걸쳐 한식 관련 기사를 게재한 NYT가 냉면이란 단일 메뉴를 이렇게 기사화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음식에 대한 단순한 소개라고 넘길 일이 아니다. 음식 이해가 상대의 문화알기 마지막 단계라던가. NYT의 냉면 특집은 주류사회의 한국 나아가 한류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커졌음을 말해주는 또다른 방증이다. 삼성.LG 휴대폰에 대한 주류사회의 높은 평가와는 성격이 다른 한국에 대한 호감과 친밀도의 수준을 가늠케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사뭇 크다. NYT 취재기자가 김정현 사장이 냉면을 처음 먹던 순간을 "어린 소년이 얻을 수 있는 놀라운 감동(epiphanny)"이라고 적은 것은 단순한 전달이 아닌듯 싶다. 속말로 '뿅 갔다'가 걸맞을 법한 epiphanny는 보는 이로 하여금 금방 "나도 맛을 봐야겠다"는 충동을 일으킬만 하다.


며칠전 메릴랜드주 감사원장이라는 사람이 남북한도 구별 못하고 "한국이 미국에 미사일을 쐈다"는 망언을 해 여러 사람을 성나게 만든 적이 있다. 결국 여든네살 노인의 헷갈림이 분명해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주류사회의 대한(對韓) 인지도가 요모양인가'라는 회의가 맴도는 가운데서 나온 NYT의 냉면 특집은 이런 의구심 내지 불쾌감도 씻어 준다.


그러고 보니 눈까지도 시원하게 만드는 온 겨레가 함께 즐기는 냉면엔 냉큼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꽤 근사한 의미가 담겼다는 상상도 하게 된다. 수많은 가느다랗고 긴 면발이 맛깔스런 고명.야채와 어우러진 것 하며…. 분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껴안고 살다보니 음식하나도 편히 못대하는게 답답하다. 여기야 음식이 지천이고…북한 주민들이 끼니 걱정만이라도 않고 냉면 원조답게 냉면을 맛보며 살았으면 좋겠다.


자료원 : 뉴욕aT센터 / JoongangUSA(뉴욕중앙일보 김현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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